5년 만에 신혼여행 - 장강명
|
'요즘 책방:책 읽어드립니다' 프로그램을 보면서 몇몇 출연진들에게 매력을 느꼈다. 그중에 장강명이라는 순한 토끼 같은 눈꼬리를 가진 사람이 궁금해졌다. 알고 보니 제법 유명한 소설가였는데, 소설은 거의 가까이하지 않다 보니 몰랐다. 밀리의 서재에서 그의 이름을 검색해 보고 가장 먼저 고른 책이 '5년 만에 신혼여행'이었다. 장강명이라는 사람이 궁금했으니 그의 에세이부터 읽기 시작했다.
장강명이란 사람은 지구라는 별에 살고 있는 어린 왕자 같았다. 운명의 상대와 결혼하겠다고 다짐하는 것도 그랬고, 공대생임에도 기자를 꿈꾸고 기자가 되었으며, 안정적인 기자생활을 그만두고 소설가로 인생을 다시 시작해서 나름 성공했다. 돈이 많거나 집안이 좋아서 이것저것 해볼 수 있는 경우는 아닌 듯했다. 그저 자신의 감정에 참 솔직했고,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 같았다. 착실하게 회사 다니면서 살아온 나에게는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유형의 사람이었다.
그는 2009년에 결혼했는데, 요즘 젊은 사람들보다도 더 파격적이고 진취적으로 결혼생활을 해나갔다.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으며, 딩크를 결심하고 나서 정관수술까지 받고, 고부갈등을 막기 위해 시어머니와 며느리를 완벽히 분리해버렸다. 그는 부모가 뭐라 하건 간에 그에 수긍하거나 적당히 타협해서, 시시한 '애완 인간'같은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니었다.
결혼한 지 5년 만에, 큰 결심을 하고 3박 5일 보라카이로 신혼여행을 떠난 부부의 이야기는 마치 바로 옆에서 들여다보듯 생생했다. 공간의 분위기, 움직임, 순간적인 느낌과 생각, 그리고 아내와의 대화가 잘 버무려졌다. 소설가란 참으로 부러운 사람이다. 어쩜 이렇게 글이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게 쓸까. 보라카이에 대한 어떤 여행 서적을 읽은 적도 없는데, 지금 당장 보라카이에 있어도 낯설지 않고 대충 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라카이 여행 둘째 날 밤, 드디어 부부싸움이 일어났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정말 흔한 싸움의 이유, '내가 OOO 하는지 몰라?!'
상대방이 당연히 알 거라는 기대가 어긋나 서운함이 폭발하여 발생하는 다툼이다. 결혼 5년차라도 서로에 대해 모르는 점이 여전히 남아있구나 싶었다. 그래 뭐, 한편으로는 다행 아닌가. 속속들이 다 알면 편하기는 하겠지만 재미는 없으니까. 아무리 늙어도 서로에게 끊임없이 궁금함이 있었으면 좋겠다.
제목은 신혼여행이지만, 5년 차 부부라 그런지 대화의 밀도가 확 높아지는 때가 있다. 행복을 주제로 나눈 대화에서 그랬다. 행복해지려면 참 많은 조건이 필요한데, 그중에 한 조건만 모자라도 불행하다고. "알맞은 온도, 멋진 경치, 적당한 배부름이 필요해. 화장실도 가지 않아야 하고 몸의 자세도 편안해야 하고. 누워 있더라도 어떤 자세가 안 좋으면 계속 뭐가 신경이 쓰여. 내 행복은 왜 이리도 조건이 많을까?" 대화는 마음먹기로 이어진다. "물질적인 방면으로는 전혀 노력을 들이지 않고 정신력으로만 행복을 성취하겠다고 하면 사명대사 수준으로 도를 닦아야 해. 굳이 엄청난 수련을 사명대사 경지에 올라야 할까? 그렇게 해서까지 오로지 마음만으로 행복을 얻느니 그냥 조금 자존심 굽히고 사는 게 낫지."
여행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무렵이 되서야 어떻게 지내야 할지 겨우 알 것 같다는 그녀의 말에 깊이 공감했다. 그리고 인생에 대한 비유와도 같다는 그의 말에도 깊이 공감했다. 우리도 신혼여행이 끝날 무렵 비슷한 대화를 했었다. 뭘 해야 되고 뭘 먹어야 하는지, 어디를 꼭 가야 하는지, 이렇게 하면 시간을 아낄 수 있다든지 등 아쉬웠던 점을 이야기했고, 언젠가 꼭 다시 오자고 약속했었다.
나는 여행 중간중간 떠오르는 생각들은 많지만 일정이 바빠서, 귀찮아서, 피곤해서 흘려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다음에 여행을 가게 되면 틈틈이 잘 기록해서 나중에 다시 한번 읽고 싶다. 입장권이 얼마니 그런 기록보다는, 마음을 비디오로 녹화한 것처럼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나 감정, 냄새를 샅샅이 기록하고 싶다. 그 때의 내가 어땠는지 찬찬히 느껴보고 싶다.
'독서후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 - 이동진 (4) | 2020.08.07 |
---|---|
동물 농장 - 조지 오웰 (2) | 2020.08.06 |
돈의 속성 - 김승호 (6) | 2020.08.04 |
당신이 옳다 - 정혜신 (4) | 2020.07.29 |
사이언스 앤 더 시티 - 로리 윙클리스 (0) | 2020.07.20 |
딩크족 다이어리 - 곰토 (0) | 2020.07.15 |
댓글
이 글 공유하기
다른 글
-
돈의 속성 - 김승호
돈의 속성 - 김승호
2020.08.04 -
당신이 옳다 - 정혜신
당신이 옳다 - 정혜신
2020.07.29 -
사이언스 앤 더 시티 - 로리 윙클리스
사이언스 앤 더 시티 - 로리 윙클리스
2020.07.20 -
딩크족 다이어리 - 곰토
딩크족 다이어리 - 곰토
2020.0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