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보성::추운 겨울날, 한옥 목임당에서 묵다.
남편의 이직을 기념하여, 깊숙한 시골로 잠시 떠났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제주도처럼 사람이 많이 모일만한 곳은 피하고, 저의 로망이었던 한옥스테이를 하러 갔습니다. 에어비앤비 검색으로 접한 목임당은 이름부터 굉장히 우아하고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여러 숙소를 놓고 고심한 끝에, 후기도 좋고 숙박비용도 괜찮았던 목임당에서 2박을 머물기로 했습니다.
사실 남편은 한옥에 대한 로망이 거의 없다시피 했고 웃풍을 매우 싫어하며 추위를 많이 타기에, 겨울+한옥에 약간 부정적인 입장이었습니다. 제가 몇 번 한옥에서 숙박해보고 싶다고 했기에, 제 소원을 들어주러 간 것이었어요. 2박 머무른 후 저희 남편의 평가는...? 마지막에 소개하겠습니다 :)
첫 만남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주암호를 끼고 한참 들어왔습니다. 마침내 동네 어귀에 들어와 바닥에 표시된 화살표를 따라 살금살금 오르다보니 소박하면서 아름다운 목임당이 나타났습니다.
목임당의 첫 인상은 정겨운 시골집 같다는 느낌이었어요. 가옥은 가로로 길고, 앞에는 넓은 흙마당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목임당은 2020년 9월에 EBS 건축탐구 집 - 조화로운 집, 조화로운 삶 편에 소개되었습니다.
원래 집 투어도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중단하신 듯합니다.
목임당에 가시게 된다면, 위 동영상을 미리 보고 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집의 역사와 특징, 자칫하면 놓칠 수 있는 매력 포인트를 알 수 있어요. 그리고 호스트인 김수자 선생님의 따뜻하고 푸근한 매력을 느낄 수 있고요.
목임당의 마스코트, 가을이입니다. 덩치는 커도 순하고 착한 개였어요.
목임당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인증한 우수한옥체험숙박시설입니다. 한옥스테이 마크가 촌스럽지 않고 예쁘게 디자인 된 것 같아요.
마당 한 켠에는 김수자 선생님의 입간판이 바베큐 그릴과 함께 있었습니다. 저희는 겨울에 방문했기 때문에 실내 주방에서 조리해 먹었지만, 따뜻한 계절에는 마당에서 고기를 구워 먹어도 좋을 것 같네요.
가까이서 보니 더 예쁜 집입니다. 벽에 걸려 있는 소쿠리도 사랑스럽고, 작고 아담한 나무들도 너무 귀엽습니다. 왠지 영화 리틀포레스트가 생각나는 풍경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기단이 자연석으로 만들어져 따뜻한 느낌을 주는 것 같습니다. 'EBS 건축탐구 집'에서 건축가님이 이 집은 기존의 자재를 잘 살려서 집을 수리했기 때문에, 요즘 새로 지어진 한옥처럼 깍쟁이 같은 느낌이 없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저는 이 기단에서 건축가님과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요즘 지어진 한옥은 기단을 되게 반듯하게 잘린 돌로 만들던데, 목임당의 기단은 모양과 색깔이 저마다 다른 돌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툇마루
목임당 안으로 들어가 보면, 툇마루에는 창호를 달아 겨울에는 찬 바람을 막아주어 따뜻하게 유지되도록 했습니다. 추위에 약한 한옥의 단점이 확실하게 보완된 셈이지요. 어찌보면 툇마루가 아파트 베란다이자 복도가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건 그냥 제 생각인데, 기둥과 함께 지붕을 떠받쳐 주기 때문에 가옥의 보존 측면에서도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마을에서 나고 자란 소나무, 홍송으로 지어진 집이라고 합니다. 서까래의 굵기도 제각각이고, 곧은 나무도 있고 휘어진 나무도 있습니다. 저는 이 툇마루가 너무 좋았어요. 날씨가 춥지만 않았어도 여기서 오랜 시간을 보냈을 것 같습니다.
거실
방 안으로 들어오면 서까래가 드러난 멋진 지붕이 눈에 들어옵니다. 노란색 조명이 따뜻한 느낌을 주어 한옥과 정말 잘 어울렸습니다. 형광등이 달려 있더라면 굉장히 밋밋한 느낌이었을 것 같아요.
누워서 뒹굴거릴 때 보니, 가운데 기둥(상양보)에 한자가 쓰여 있어요. 저도 한자를 잘 아는 편은 아니라서 숫자 몇 개만 겨우 읽었습니다. 'EBS 건축탐구 집'에서 선생님이 설명해 주셨는데 이 집은 1958년도에 지어졌다고 합니다. 여순사건으로 동네가 불에 타버렸고, 이후에 새로 지었다고 하네요.
거실 한 켠에는 TV가 있고, 반대쪽 벽에는 붙박이장이 있습니다. 특히 위쪽에 있는 작은 수납 공간은 할머니가 맛있는 걸 숨겨놓았다가 손주들에게 하나씩 꺼내주는 상상을 하게 만드는 공간이었어요. 아래쪽 수납장에는 담요와 아이들 장난감이 들어있었습니다.
보일러를 21~22도로 맞춰놓았는데 바닥이 엄청 뜨끈했습니다. 진짜 온돌은 아니지만 아랫목 체험은 제대로 했네요. 목임당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아랫목에 누워 뒹굴뒹굴하면서 보냈습니다. 아침마다 차도 내려마시고, 과자와 귤도 잔뜩 먹었어요.
침실
예쁜 침대가 놓여있는 아늑한 침실입니다.
침대 옆은 병풍이 놓여있고, 정갈하고 아늑하게 꾸며져 있어요. 저희 부부가 둘 다 키가 큰 편인데요, 침대 크기도 적당해서 자는데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침대 매트리스는 약간 단단한 편입니다. 일반적으로 숙박시설 매트릭스는 고급 호텔이 아니고서야, 스프링 상태가 안좋은 경우도 종종 있는데 목임당 침대는 푹신하진 않지만 만족스러웠습니다. 남편은 단단한 매트리스를 좋아해서 집보다 편한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주방
주방은 한옥의 매력을 살리면서도 사용하기 편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일반 가정집처럼 조리기구들은 대부분 갖춰져 있기 때문에 요리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에어프라이어도 있으면 더 좋을 것 같아요^^)
목임당이 있는 동네에는 마트나 편의점이 전혀 없기 때문에 모든 음식을 준비해 와야 합니다. 목임당에서 가까운 하나로 마트도 6.7km 떨어져 있는데요, 농협 은행과 같이 있어서 규모는 크지 않습니다. 미리 식량 계획을 잘 세우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주방에 정말 다양한 그릇이 있습니다. 흔하게 볼 수 있는 코렐 그릇이 아니라 따뜻한 느낌의 도자기 그릇이어서 목임당과 굉장히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싱크대 곳곳에 밥공기, 앞접시, 국그릇 뿐 아니라 찜류를 담을 수 있는 넓고 깊은 대접, 샐러드 및 파스타를 담기 좋은 보울 등이 있었습니다. 나무로 만든 술잔도 독특했고요. 플레이팅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그릇 구경하는 데 재미를 느끼실 듯 합니다.
목임당에서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이유는 예쁜 다기세트를 이용해서 다양한 차를 맛볼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도 체험을 해봤더라면 좀 더 잘 사용해 봤을텐데 조금 아쉽네요.
화장실 &...
화장실이 정말 거실만큼 넓었습니다. 그리고..! 바닥에 난방이 되어서 굉장히 따뜻했어요. 차가운 타일소재가 아니라, 돌이나 흙으로 만든 듯 한데...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맨바닥으로 다닐 때 감촉이 따뜻하고 좋았습니다. 화장실에서 잘 수 있을 정도였어요. 목임당에 오기 전에는 화장실이 추울까봐 걱정했는데 뜨거운 물도 잘 나오고 아주X100 만족했습니다.
저희는 2인이라 굳이 사용할 필요가 없었던 공간입니다. 바닥에서 잘 수 있는 방이 하나 더 있고, 샤워실도 한 개 더 있습니다.
쪽마루
자칫하면 놓치고 갈 수 있는 목임당의 매력 포인트! 바로 쪽마루입니다. 제가 방송 앞부분만 조금 보고 가서 쪽마루의 존재를 몰랐는데요(방송에는 나옴), 저녁 먹다가 툇마루 반대쪽 문을 열어보니... 글쎄 엄청 멋진 공간이 등장한 것이에요!!!
돌담 너머 서재필 선생님 생가가 있어서 더욱 아름답습니다. 쪽마루는 그늘이 져 있어서 여름에는 이 곳에 앉아 있으면 정말 시원할 것 같고, 비오는 날에는 운치가 끝내 줄 것 같아요. 그리고 거실에 앉아서 쪽마루 쪽을 봐도 그림처럼 예뻤습니다. (남편이 나온 사진 밖에 없어서 올리지 못하네요 ㅠㅠ)
마무리
에어비앤비 후기에 한옥의 단점은 최소화하고 장점은 최대화 한 곳이라는 댓글이 달려 있었는데, 깊이 공감했어요. 이틀 동안 특별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만 있어도 힐링되는 기분이었어요. 남편도 어릴 적에 방학이면 할머니 댁에서 한 달간 놀다오곤 했다던데, 그 때 생각이 나는 듯 했습니다. 남편은 편의점이나 마트가 주변에서 멀다는 점만 제외하고는 모든 면에서 만족했다고 하네요.
주변 관광지로는 주암호 주변 드라이브, 송광사, 고인돌 공원 등이 있고, 좀 더 멀리 가면 보성 녹차밭, 벌교 읍내(태백산맥 문학거리, 꼬막 정식 등)이 있습니다.
조용한 곳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며 편히 쉬고 싶으신 분들께 추천하고 싶은 숙소입니다. 한옥이지만 집이 무척 잘 지어졌기에, 추위나 더위 걱정 없이 사계절의 매력을 톡톡히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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