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정선::민둥산 억새 구경을 위한 1박 2일 여행
제 인생의 버킷리스트는 대부분 사진 커뮤니티를 활발하게 눈팅하던 대학시절에 채워졌습니다. 버킷리스트라고는 하지만 절실하진 않았고, 살면서 기회가 될 때마다 하나씩 이루어 나가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살았어요. 그중 하나가 민둥산에 올라 만발한 가을 억새밭을 보는 것이었는데, 그 꿈을 올해 드디어 이루었습니다. 1주년 결혼기념일 여행에서 말이지요.
이번 강원 정선여행은 기차를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오랜만에 기차를 타서 옛날 여행의 정취를 느끼고 싶었고, 여행 동선이 비교적 간단했기 때문입니다. 하루는 민둥산에 올라 억새밭을 보는 것이었고, 다음 날은 강원랜드에 가는 것이 전부였거든요. 마침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도 1단계로 바뀌었기 때문에, 마음이 조금은 편했습니다.
민둥산역으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청량리역에 갔습니다. 청량리역은 경춘선이 없어지고 itx청춘으로 바뀌면서, 마지막으로 경춘선을 타려고 2010년에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요, 매우 낡고 오래된 느낌의 청량리역이 리뉴얼되어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아무튼 11시에 청량리역에서 민둥산역으로 가는 무궁화호 열차를 예약해 두었습니다.
참고로 정선아리랑(A-train) 열차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정선아리랑 열차는 수요일~일요일에 운행하며(월, 화요일은 5일장, 성수기, 지역 축제 등 요건에 따라 운행 여부 결정), 하루 1회 운영합니다. 정차역은 청량리-원주-제천-영월-예미-민둥산-별어곡-선평-정선-나전-아우라지입니다. 출발 시각은 청량리역 기준 오전 8시 34분이고, 민둥산역에 도착하는 시간은 오전 11시 38분으로 약 3시간 소요됩니다. 무궁화호/누리호 이용 시 3시간 10분 정도 걸리니까 거진 비슷한데, 티켓 값은 10,000원 가량 차이가 납니다. 그래서 꼭 정선아리랑 열차를 이용할 이유가 없다면 일반 무궁화호/누리로를 타는 것이 낫습니다.
기차 탑승 전 체온을 체크하고, 자동 손소독기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기계 안에 손을 넣으면 소독액이 취~익 하면서 뿌려집니다.
무궁화호를 타면 강원도의 수많은 역을 들러 동해까지 갑니다. 이 라인은 옛날에 석탄 산업으로 부흥했던 영월, 정선, 태백 등 강원도 내륙 마을을 지나갑니다. 현재 무궁화호/누리호는 1일 6회 운행되며 강원도 남부 내륙권의 주요 교통수단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무궁화호 기차는 꽤 많이 낡아보였습니다. 예전 경춘선 열차를 탔을 때 느낌이 났어요. 낡아도 오랫동안 잘 운영되는 기차를 보면, 나이가 들어서도 열심히 일하는 아버지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열차 내부에도 연식이 느껴집니다. 오랫동안 누적된 것 같은 쿰쿰한 냄새, 옛날에는 세련되어 보였겠지만 지금은 전체적으로 바래진 모습, 이에 어울리는 갈색 시트의 의자는 과거로 시간여행을 하는 기분을 느끼게 해 줍니다. 무궁화호 열차는 앞뒤 좌석 간 거리가 넓어서 좋았습니다. 몇 가지 아쉬운 점은 자리에서 스마트폰 충전이 불가하고, 와이파이 연결이 불가하며, 미니 테이블이 없다는 점이었어요.
기차에서 책을 읽으려고 이북 리더기를 가져갔습니다. 여행 갈 때는 복잡하고 어려운 책보다는 술술 읽을 수 있는 에세이가 더 나은 것 같습니다. 허지웅의 '살고 싶다는 농담'을 골랐는데, 밑줄 치고 싶은 문장도 많고 앞으로 삶을 어떻게 꾸려가야 할지 돌아보게 만드는 책이었어요.
책을 읽으면서도 집중하기 힘들었던 것은, 풍경이 정말 끝내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이 무궁화호 열차가 정말 좋아졌어요. 약간은 지루하고 심심하지만, 그럴 때마다 그림 같은 풍경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다가 터널로 쏙 숨어버리기도 하고 밀당의 시간들이 이어졌습니다. 곧 다가올 겨울의 풍경은 어떨지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가을의 무궁화호 풍경을 살짝 보여드립니다.
햇빛을 받으며 꾸벅꾸벅 졸다가, 휴대폰도 보다가, 책도 보다가, 풍경을 보다보니 어느덧 민둥산 역에 도착했습니다. 3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이 참 길기는 하네요.
14시 11분, 드디어 민둥산역에 도착하였습니다. 민둥산역에서 내리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멀리 보이는 산에는 벌써 가을 느낌이 가득이네요.
민둥산의 상징인 갈대로 꾸며져 있는 작지만 예쁜 역입니다.
민둥산 역에서 하차한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져버려 어디론가 다들 사라졌습니다. 역 앞은 정말 썰렁할 정도로 조용했어요.
역 앞마당입니다. 멀리 보이는 민둥산은 단풍의 절정에 이르러, 붉은 가을 옷으로 갈아입었습니다. 아무리 봐도 억새밭은 안 보이네요.
민둥산역의 본래 역 명은 증산역이었습니다. 이제는 억새 군락지로 더욱 잘 알려지다 보니, 2007년에 개명을 추진하여 민둥산역으로 바뀌었습니다.
계단 아래에는 읍내가 보입니다. 한창 민둥산 억새꽃 축제기간으로 사람들이 제법 많아야 할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코로나로 인해 축제가 취소되어서 그런지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침도 대충 도넛으로 때워서 살짝 출출한 상태라 점심을 먹어야 했는데요, 그렇지만 해가 많이 짧아져서 빨리 식사를 하고 입산을 해야 했기 때문에 편의점에 가서 후다닥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콜택시를 불러서 증산초등학교로 이동했습니다. 민둥산역에서 약 1.2km 떨어져 있어서 금방 갑니다.
알록달록한 벽화가 그려져 있는 증산초등학교 입구입니다.
증산초등학교 앞 주차장입니다. 출발할 때 찍는 걸 깜박해서 하산해서 찍었어요. 차를 가져오신 분들은 증산초등학교 앞 주차장을 이용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증산초등학교 맞은편이 등산로 입구입니다. 저희는 2시 55분에 등산로 입구에 도착해서 코로나19 관련 출입 명부를 작성했습니다. 조금 늦은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지만, 그래도 올라가는 사람들이 간간히 있어서 급하게 출발해 봅니다.
천불사 쪽으로 성큼성큼 올라갔는데 막혔더라구요. 다시 내려와서 반대방향으로 올라갔습니다. 등산 기록은 살짝 맛보기만 보여드리고 다음 글에 자세히 포스팅하도록 하겠습니다. 생각보다 정말 힘들었어요! ㅠㅠ
1코스 - 완경사를 선택해서 약 3.2km를 걸어 올라갔습니다. 시간은 오후 3시에 출발해서 4시 30분쯤에 도착했습니다. 가이드 상에 1시간 30분 걸린다고 하던데, 딱 그만큼 소요되었네요.
민둥산에서 내려와서 택시를 타고 사북으로 이동했습니다. 5km 조금 안 되는 거리라 택시비는 8,900원이 나왔네요. 다음날 강원랜드에 갈 생각이라 정선 인투라온 호텔로 숙소를 잡았습니다. 호텔에 대한 이야기도 따로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녁을 먹으려 사북읍내로 걸어서 나왔습니다. 근처에 강원랜드가 있다 보니 모텔과 전당포가 제일 많은 것 같아요. 그 외에 백반집, 중화음식점, 물닭갈비식당 등이 눈에 띄었지만, 특별히 지역 향토음식은 없는 듯 해서 감자탕을 먹으러 갔습니다.
곤드레 감자탕입니다. 일반적인 감자탕의 맛이라서 후기는 따로 작성할 것은 없네요.
강원랜드는 결국 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1단계로 풀렸다고는 하나, 방문 전 날에 미리 예약신청을 해야 했었어요. 신청을 하더라도 추첨을 해서 당첨된 1200명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신청해야 하는지 몰랐어요... 그래도 경쟁률이 꽤 세다고 하니, 열심히!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합니다. 그나저나 강원랜드에 입장하는 것부터 행운을 사용해야 할 것 같네요. 하하
강원랜드를 못가게 되었기 때문에 기차시간을 당겼습니다. 숙소에서 11시 체크아웃을 하고, 식사를 한 뒤 바로 사북역으로 가서 12시 32분 기차를 타는 것으로 일정을 바꾸었어요.
식사는 청년몰에서 해결했습니다. 사북시장과 가까이 있어요. 안에는 떡볶이, 햄버거, 짬뽕집, 예쁜 카페 등 젊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가게들이 있습니다. 옥상 정원은 아직 공사 중이었구요.
떡볶이와 햄버거를 먹었습니다. 햄버거는 패티가 햄버거 크기에 비해 조금 작아서 아쉬웠어요. 전반적으로 무난한 맛이었습니다.
사북역에서 누리로를 타고 청량리로 갔습니다. 차로 왔으면 정선 이곳저곳을 들러볼텐데 아쉬움이 남네요. 그래도 오랫만에 기차로 여행하니 학생 때로 돌아간 듯한 기분도 들고, 인생의 버킷리스트를 제대로 이뤄내어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만한 여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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